봉준호 통역사

세상돋보기|2020. 1. 8. 18:25

봉준호 통역사

한국 영화사 101년만에 처음으로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를 수상하면서 단상 위에서 봉준호 감독의 말을 통역한 최성재(샤론 최) 씨에게도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와 달변을 적절하고 매끄럽게 번역해 호평이 이어지는 중이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라는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된 데에도 샤론 최 씨의 통역이 한몫을 했다는 평이다.


특히 지난 5일(현지 시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직후 미국 '미국 할리우드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봉준호 감독과 이야기하던 도중 샤론 최 씨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통역사가 질문을 받는 일은 이례적이다.


이날 진행자는 샤론 최 씨에게 "질문이 있다. 당신도 '기생충'과 함께 하며 스타가 됐다"라고 소감을 묻자 샤론 최 씨는 당황한 듯 웃어 보였다. 샤론 최 씨는 "나 역시 이 영화와 많은 감독의 큰 팬이다. 굉장히 쑥쓰럽다"라고 짧게 말했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그는 큰 팬덤을 가졌다. 완벽하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 훌륭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라고 샤론 최 씨를 직접 소개했다. 이에 진행자는 "내년에는 영화 감독으로 이 자리에서 만났으면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봉준호 감독은 미국 진출을 위해 먼저 미국에 진출한 박찬욱 감독이 미국과 유럽에서 자리잡는데 스텝 중 영어 통역 능력자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는데서 봉준호 감독도 최고의 스텝으로 샤론 최(최성재)를 선택했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 영화지식까지 고루 갖추는 것으로 알려진 샤론 최는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서부터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아왔는데, 지난달 미국 NBC TV 지미 팰런의 '더 투나이트 쇼'에 출연할 당시에도 자연스러운 통역 실력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진행자가 '기생충'의 줄거리 소개를 부탁하자 봉준호 감독은 "나도 이 자리에서 되도록 말을 안하고 싶어요. 스토리를 모르고 가서 봐야 재미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여기서도 샤론 최 씨는 "I'd like to say as little as possible here because the film is the best when you go into it cold"라고 통역했다. 준비 없는 상태를 말하는 'cold'라는 단어를 사용해 봉준호 감독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했다는 평이 나왔다.


이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 조회 수는 100만이 넘었고, 현지 팬들은 "봉준호 감독의 유머를 놓칠 수도 있었는데 통역사가 저기 있는 이유다", "통역사 진짜 놀랍다", "빠르고 효율적인 통역을 한다"라고 칭찬했다. 


영국 가디언 역시 '더 투나이트 쇼'에서 샤론 최 씨의 활약을 주목했고 "두 언어에 대한 지식, 엄청난 기억력을 갖고 있다"라고 극찬했다. 


20대 중반인 샤론 최 씨는 한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직접 단편 영화를 만든 경력도 있다고 알려졌다. 이에 영화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샤론 최 씨에 대해 "언어의 아바타처럼 모든 통역을 완벽하게 해준다"라고 극찬의 표현을 쓰기도 했다.




작은 디테일도 생생하게 살려 전달하는 솜씨 덕에 샤론 최의 통역으로 영어 공부하는 유튜브 영상까지 등장했다. 통역사들이 말하는 통역의 제1원칙 '사견을 배제하고 토씨 하나까지 전달하기'에 부합한다.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옥자'에서 어눌한 한국어로 통역하는 케이(스티브 연)의 팔뚝엔 이런 문신이 새겨져 있다. "Translations are sacred(통역은 신성하다)." 마음에 말을 얹어 배달하는 일. 작은 언어 배달부들이 세상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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