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명스님 다비식

세상돋보기|2019. 12. 24. 21:51

봉명사 적명스님 다비식 엄수

우리나라 불교계의 대표 선승 중 하나인 경북 문경 봉암사의 '적명스님'이 12월 24일에 입적했습니다. 향년 96세입니다. 경찰과 대한 불교 조계종에 따르면 적명스님은 24일 오후 경북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 근처 계곡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24일 오전 사찰 후 희양산에 오른 적명스님은 하산 도중 다른 스님들과 떨어지게 됐다고 합니다. 경찰은 적명스님이 발을 헛디뎌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적명스님 업적

적명 스님은 평생 토굴과 선원에서 참선 수행에 집중한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평가받습니다. 참선 수행도장인 봉암사에서 큰 어른을 뜻하는 조실 요청을 거절하고 수좌로 있으면서 후배를 양성해 왔습니다. 적명스님은 종단 최고 법계의 대종사입니다.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은 제주 불교 중흥의 김석윤 스님의 손자이며 관음사 2대 주지 오이화 스님의 맛상좌였던 성수 스님의 자제로 제주 불교 100여년 승가의 역사를 이었습니다. 


적명스님은 오현고를 졸업 후 21세, 나주 다보사의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스님은 이후 이 오십여년 동안 오로지 전국 토굴과 선원에서 참선 수행한 스님으로서 한국 스님들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수좌에 첫 손가락에 꼽는 본분납자입니다.


적명스님은 전라남도 나주 다보사로 천진도인으로 유명한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비로암에서 정진한 후 실상사 선방인 백장암 그리고 김천 수도바위, 강원도 제방 선원에 이어 영천 기기바위에서 8년간 정진하였습니다. 지난 2007년 봉암사 수좌가 봉암사 조실로 요청했으나 여러 차례 거부하고 결국 조실이 아니 '수좌'라는 조건으로 그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조계종 종단에는 선지식들이 많지만 특히 산사에서 평생을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는 수좌는 2만 여의 승려들 중 1800여명에 불과합니다. 이 수좌를 "본분납자"라고 합니다. 본래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승려라는 뜻입니다. 즉, 참선선수도라는 본래의 길을 걷는 스님을 말합니다.  


한번도 주지 역할을 맡은 적이 없고 오로지 수도에만 매진했던 적명스님은 수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가장 신망을 받는 본분납자가 되었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적명 스님을 일컬어 언젠가 조계종 종정이 되실만한 분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적명스님은 외부 출입은 하지 않고 하안거, 동안거 때는 꼬박꼬박 결제에 임하고 오로지 본분사에만 정진하고 있기 때문에 교계에서 사정이 밝다는 재가불자도 적명스님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적명스님 스스로도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다"며 "아직 한번도 결제시즌과 세미나 등을 제외한 다른 법석에서 법문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물론, 일반 언론은 물론이고 교계 언론에서도 스스로 인터뷰한 적은 없으십니다. 


적명스님 다비식 엄수

지난 12월 24일 입적한 적명스님의 다비식(茶毘式)이 28일 경북 문경시 봉암사에서 엄수되었습니다. 다비식은 죽은 이의 시신을 불태워 유골을 거두는 의식입니다.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스님의 법구(法軀)를 인근 연화대로 옮겼습니다. 약 2m 높이로 나무와 숯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 화장장에는 법구가 안치된 뒤 불이 붙어졌습니다. 희뿌연 연기를 내며 나무가 타들어 가자 스님의 육신도 화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적명스님은 평생 선원과 토굴에서 참선 수행에 집중한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참선 수행도량인 봉암사에서 후학을 양성해 왔고 향년 80세로 사망하셨습니다.

조계종 원행스님도 추도사를 통해 "한국불교의 큰 스승 한 분을 적멸의 세계로 떠나보낸다. 생사와 이별의 경계를 마땅히 넘어서야 하지만 이렇게 큰 스승을 보내야 하는 마음은 허허롭기 그지없다"고 추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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